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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틀’서 ‘로켓 발사대’까지…상상을 제품으로

문래동 기술장인들의 협업…협동조합 정수 김의찬 이사장 



“아이디어만 가지고 오세요. 여러분이 ‘상상’한 제품을 설계부터 해서 디자인, 제작, 검수까지 알아서 만들어드립니다.”

협동조합 정수의 김의찬 이사장(정수메이커 대표)은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스타트업은 물론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제품화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며, 문래동에 오면 기술장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기계소리가 쉼 없이 울려퍼지는 문래동 골목에서 40년간 기계 밥을 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목형과 금형을 전공하고, 1982년 문래동에 들어온 김 이사장은 손으로 나무를 깎아 기계부품 시제품이나 장식품 등의 목형을 만들어온 장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김 이사장은 목형과 3D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보다 정교하면서도 작업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며 생산효율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주빵, 100원빵 등 각 지역 특산품 빵이나 캐릭터 빵 틀은 대부분 정수메이커에서 만들어졌다. 성수동 수제화거리에 설치된 하이힐 입상도 김 대표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산업이 시작되는 곳…문래동 기계금속 소공인 집적지

지난 1970년대 조성된 문래동 기계금속 소공인 집적지는 대한민국의 기계·금속분야 기술장인들의 보고다. 주조, 단조, 금형, 목형, 선반, 프레스, 밀링, 도금, 열처리 분야 등 13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모여있는 이 곳은 우리 산업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 업체는 대기업의 5차, 6차를 넘어서 n차 납품업체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마술처럼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문래동 기술장인들임에도 낮은 수익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협동조합 정수는 문래동 기술장인의 기술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이곳을 전통제조업 밀집지역으로 되살리고자 한 김 이사장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다. 지난 2019년 정수메이커를 비롯해 화인레저, 우정용접, 아심테크, SK Aero 등 13개사가 참여해 기계금속장비, 방산, 항공, 레저, 옥외광고, 목형 주조 등 각기 다른 분야의 기술장인들이 하나가 됐다.
 

김 이사장이 협동조합 정수를 설립한 것은 2019년이지만, 그 이전 3년 동안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 만나보고 함께 일해보면서, 오래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문래동에 많은 소공인이 있지만, 단순히 친분이 아닌 진짜 전문가 그룹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정수…방산 부품·장비 국산화에 도전하다

협동조합 정수는 수입에 의존해 오던 방산 부품 및 장비의 국산화 사업에 뛰어들며, 단순임가공에서 고부가가치형 사업영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협동조합 정수는 서울산업진흥원(SBA)에서 지원하는 지역센터 협력활성화 사업을 통해 2019년 ‘7연장 로켓 발사대’ 조립체 개발을 완료하고, 2020년~2021년에 걸쳐 제품 상용화를 위해 발사시험 및 성능 입증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군용 총포 제조업 허가서를 발급받아, 국방과학연구소 안흥 종합시험장에서 발사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7연장 로켓 발사대의 성공적인 발사시험으로 국산 소형무장헬기뿐만 아니라 코브라헬기, 아파치헬기 등 그동안 100% 수입에 의존했던 공격용 헬기의 로켓 발사대 국산화를 앞당겼다. 


협동조합 정수는 현재 19연장 로켓 발사대 개발에 돌입했으며, 국방부 및 공군과의 계약을 통해 2025년 완성될 한국형 소형 공격헬기에 이 발사대를 장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와셔, 브라켓, 무장 트레일러 등과 같은 육·해·공군의 부품 국산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문래동 기술장인들은 대기업과 비교해도 월등한 기술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모두 영세한 규모이기 때문에 국방부 사업을 수주하려고 해도 규모나 설비, 매출액, 인력 등의 심사기준에 미달해 번번히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사실 국방부에서 필요한 소규모의 작은 부품들은 규모가 영세해도 충분히 생산할 능력이 되기 때문에 기술 소공인들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품개발과 실험 비용 등에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SBA에서 발사시험과 시제품 등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지만, 발사시험 한 번에 수 천 만원이 소요되고, 소재 제작 등 자부담이 높아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래동 젠트리피케이션…“제조업 우리 기술로 채워야”




최근에는 문래동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면서, 빈 공장들이 카페며 주점들로 채워지고 있다. 기름 때 묻은 공장보다는 근사한 인테리어를 한 카페 등에 가게를 내주고 싶은 건물주들이 늘면서 임대료도 오르고, 상승한 임대료 때문에 공장들은 재계약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김 이사장은 날로 심각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일감은 줄어들고 임대료는 상승하면서, 소공인들이 하나 둘 문래동을 떠나고 수 십년 축적된 기술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며,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앞선 기술의 IT 장비들을 개발한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들이 다 외국산으로 채워진다면 진정한 우리 기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베트남 공장들이 멈춰섰을 때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을 국산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방위산업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문래동 기술장인들의 손을 거친 부품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밤이 되면 기계소리 대신 카페와 주점의 여흥이 흐르는 골목, 밤과 낮의 주인이 바뀌는 문래동이 됐지만 김 이사장은 고집스럽게 이 동네를 지킨다. 제조업은 영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 제조업의 기본부터 우리 기술로 채우며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우리 소공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그래서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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