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_ 우린 중기인
“국내 아스콘 산업 재편하는 ‘게임체인저’ 할 것”
1인 기업에서 시작해 업계 1위 기업으로…SG㈜ 박창호 대표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선언이 가속화되면서 미래산업 먹거리는 ‘친환경’에 맞춰져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은 산업계의 핵심 부가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육상에서는 전기·수소차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라면, 해상에서는 ‘알루미늄’과 ‘자율운항’ 기술이 핵심이다.
조선·플랜트·방산 분야의 구조물을 제작하는 ‘대운기업’은 2007년 창업 시점부터 전 제품을 비철로 제작하고 있고, 이 중 95% 이상의 제품을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자율운항기술시험선 제작에도 참여하며, 국내 친환경 해상운송을 이끄는 데 동참하고 있다.
“가볍고 좋네”…새로운 것에 대한 ‘로망’으로부터 시작
전국에서 알루미늄 선박을 제조하는 업체는 30~40군데에 불과하다. 회사의 규모 또한 격차가 크지 않고 대동소이하다. 회사마다 매출과 직원 수가 엇비슷한 이 업계에서 ‘특출함’을 자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대운기업은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며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운기업의 박경용 대표가 처음부터 알루미늄 구조물에 대해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산업체에 쓰이는 알루미늄은 조선소, 발전소, 미사일, 항만, 방산 등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알루미늄 구조물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다. 조선기자재 영업을 15년 동안 했던 박 대표는 당시 알루미늄을 처음 접하자마자 ‘신세계’를 만난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스틸은 녹이 잘 슬기 때문에 도금이나 페인트칠 같은 작업을 이중으로 해야만 합니다. 물론 알루미늄도 녹이 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스틸처럼 변하거나 손상이 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죠. 또 스틸은 1억원어치 팔면 그 무게만 수십톤에서 수백톤인데, 알루미늄은 비교도 되지 않게 가볍거든요. 페인트 칠할 필요도 없고, 가벼운데다 희소성까지 있으니 당연히 선택은 알루미늄이었죠. 철도, 차량, 비행기 등 값비싼 것엔 모두 알루미늄이 들어가잖아요?”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알루미늄은 해양시설에 많이 사용된다. 마리나 시설이나 물 위에 띄우는 부장교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알루미늄의 장점은 또 있다. 가볍기 때문에 기동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조선소, 일반 상선, 해경이나 해군 같은 특수선에도 많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어민들의 소형어선도 알루미늄 재질로 바뀌고 있다. 현재 국내 어선의 대부분은 섬유 강화플라스틱(FRP)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화재에 취약하고 재활용이 불가능해 제작과 폐선 과정에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제기돼왔다. 이에 FRP보다 30~40% 가벼워 연비가 높고 자외선에 의한 변형도 없는 알루미늄 소재 선박이 FRP 소재 선박의 대체재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어선 건조에 드는 비용 때문에 아직 알루미늄 소재로 바꾸는 어민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연안에 가장 많은 배의 종류는 소형어선입니다. 하지만 FRP 선박이 1억원이라면 알루미늄 선박은 2~3억원을 호가하죠.”
정부에서 금융지원 등의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루미늄 선박으로의 전환율이 적은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반면 외국에서는 알루미늄 선박이 대중적이다. 특히 유럽이나 호주 등 보트 산업이 활발한 나라에서 알루미늄 선박이 대세로 자리 잡혀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3만 달러 이상 되면 보트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선박의 소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지난 2018년에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은 우리나라는 이제 막 관련 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소규모 기업의 진정한 R&D는 ‘도전’에서부터 비롯된다
알루미늄이 녹슬지 않고 유지보수가 간편하다고 해서 제조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제작부터 용접까지 철 소재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그만큼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알루미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없다.
“저희 같은 소기업에서는 R&D를 하며 기술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프로젝트 등 다양하게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기술도 축적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산업 시스템은 항시 변하게 되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거기서 파생되는 시너지를 가져가는 것이 소규모 업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R&D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박 대표는 ‘다른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대운기업이 선박 제조를 하게 된 계기도 ‘안 해봤던 일을 해야겠다’는 도전 정신에서부터 출발했다. 알루미늄 구조물을 주로 만들었던 대운기업에 한 선박 제작업체가 배의 의장품과 선박 하우스를 의뢰했고, 관련 작업을 수행하면서 선체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운항기술시험선 제작에도 참여했다. 자율운항선박은 해상운송 패러다임을 바꿀 최첨단 미래기술로 손꼽힌다. 박 대표는 “자율운항선박의 핵심은 시스템이고, 우리는 소형 알루미늄 선박을 만드는 제조사로 참여했을 뿐”이라고 참여 경로를 설명한다.
1월 중에 시범 운항에 들어갈 예정인 이번 자율운항기술시험선은 4~5개월에 걸쳐 길이 12m, 높이 5.3m의 크기로 제작됐다. 제작이 완료된 후에는 자율운항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체와 레이더 장비부터 전자 장비를 배에 배치하고 부착하는 작업을 함께 한 후 열흘간의 시험 운행도 마쳤다.
비록 참여한 부분이 자율운항선의 핵심 분야는 아니지만, 박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 역시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출보다는 도전함으로써 시장성을 넓혀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박 한 대를 샘플로 제작하는 것이어서 신규 작업 물량이 늘지는 않겠지만,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한 번 투자해 볼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알루미늄 선박을 제조하는 작은 기업이 다른 기업과 MOU를 통해 새로운 걸 만들어 시장을 넓혀가는 그 과정이 흥미로웠거든요.”
작업 30%는 새 프로젝트…“기술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
박 대표는 39살이 되든 해 평범한 회사원에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며 자연스레 창업을 결심한 케이스다. 당시 그가 처음 가져온 일감은 대형 선박의 작업대와 같은 발판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몇 십억 단위로 영업하다가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고 나니 개당 20~30만원 하는 1단, 2단 발판을 만드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 액수의 차이를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이마저도 몇 개월 지나고 나니 다른 업체들과의 입찰에서 만원 차이에 붙고 떨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죠. 회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중 크루즈선 탑승 시스템인 항만탑승교를 제작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제주도 해군기지에 잠수함 사다리를 납품했었어요. 어느 날 부두를 설계하는 서울의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에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크루즈선의 정박 문제로 항만탑승교가 필요한데, 설치하려고 보니 폭이 12m밖에 되지 않는다며 방법이 없겠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불가능하다 생각했죠. 하지만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이 내리려면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고민 끝에 고정식이 아닌 트랜스포트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성공적으로 제작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그는 이때부터 업계에서 회사의 실적을 인정받으며 매출도 안정세로 접어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조선소에 정식 등록을 하며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조선소에 등록하려면 그 업체의 조직구성부터 시스템, 품질력과 생산능력 등 다면평가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워낙 소규모여서 등록 요건이 되지 않았지만, 항만탑승교 프로젝트를 하면서 매출이 올라 가능해졌죠.”
대운기업은 매년 작업물의 30%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채운다고 한다. 박 대표는 창업 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구조물과 배를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구조물 업체였지만 배를 만들게 됐고, 그러다 보니 김 양식 배부터 자율운항시험선까지 골고루 제작에 참여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력을 쌓아간 대운기업은 현재 ▲항만 ▲발전소 ▲마리나와 그 시설 ▲도교 ▲조선소 ▲선박에 이르기까지 해양과 관련된 모든 시설의 제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양하게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용접에서도 보다 깐깐한 작업 스킬이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쓰는 자재 종류만 100여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곳은 전국에서 저희가 유일할 겁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원에 대한 재투자다. 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회사 성장률과 발전 속도가 달라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기술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알루미늄 선박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도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상선이나 강선 등에 치중하다 보니 소형선박의 전문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의 기술력과 준비성은 90% 이상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호주나 대만의 알루미늄 선박 수출물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나라도 앞으로 시장이 커지면 유럽 등 외국에 수출할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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